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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S/Sample

[JXS] 그래도 마지막으로,_(10,000자)

더보이즈 나페스

타입: 오마카세

이니셜 처리

 

 

 

이 사랑이 버겁다는 표정을 짓는 네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나는 널 잘 아니까.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감지를 못한 건 아니었다. JS의 감정변화에 예민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S을 사랑하니까.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사랑이었다. 그런 내가 네 감정을 읽지 못할 리가 없잖아. 네 눈썹의 움직임이나, 입꼬리가 조금만 변해도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데. 대화 속에 네 정적이라거나 가만히 제 얼굴을 바라보는 네 시선엔 하지 않은 말이 묻어있었으니까. 그래도 그 말이 이별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J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익숙했고, 편했고, 사랑했고, 옆에 있다면 그건 너여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랑을 하는 모든 커플이 갖는다던 그 권태기 안에서 우리는 두세 번의 고비를 이겨내고도 널 사랑했다. 네가 짓는 표정, 하는 행동. 여전히 가슴 설레었으니까. 그런데도 버거운 사랑이었다.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건 알았지만 왜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서. 네가 주는 사랑이 너무나 과분한 사랑이라 숨이 막혔다. 그래도 좋았어, 널 사랑해서, 널 놓고 싶지 않았어. 버거운 사랑. 버거운 너.

 

S의 첫인상. 착한 애였고, 은근히 시선을 잡아끄는 애였다. 처음에 인사를 해주는 목소리나 말투가 듣기 좋았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웃고 함께하게 되면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SJ은 퍽 잘 맞는 사람이었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뭘 하지 않아도 웃음이 나왔다. 주변 사람들도 둘을 보면 잘 맞는다고 말을 했다. 아마 둘도 인식하기 전부터 둘 사이가 심상치 않는다거나 하는 발전 가능성을 본 사람도 있을 거였다. S은 누가 보아도 착한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에 슬쩍 웃으면 올라가는 입꼬리가 못해 사랑스러웠으니까. 그런 S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래도 벽이 있다고 해야 하나. S과 친해도, 어느 정도 친해지면 그 이상으론 친해지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착해 빠져서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매번 고생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웃어넘겼다. 그런 S이 보여서, 눈에 밟혀서 JS과 함께였다. J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처음 만난 사람도 쉽게 J에게 마음을 주었다. 툭툭 치는 장난은 선을 넘지 않아 즐거웠고, 모두가 J과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런 J은 언제나 S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었다.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JS과 있으면 재미있었고, 착해 거절도 하지 못해 힘든 일 자처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신경 쓰였고, 제 장난에 웃어주는 네 표정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였다.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채로 매일 함께하는 사이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선을 넘지는 않았다. 쉽게 고백하고 사귀어서 다신 못 볼 사이가 되기는 싫었으니까. 그만큼 네가 좋았으니까. 먼저 마음을 전한 건 S이었다. 더 이상은 친구로 지내기가 힘들어서 오래 고민하고 꺼낸 말이었다. 네 유일한 사람이자 우선순위에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어. 나른 친구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

 

봄이었다. 초봄이었고, 벚꽃이 피어있었다. 벚꽃이란 철이 있어서 그런가. 짧게 피고, 금방 져서 더 예쁘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가. 봄에 피는 벚꽃은 낮에 보아도, 밤에 보아도 예뻤고, 그 밑에서 제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조그만 여자아이는 사랑스러워서, 벚꽃보다 붉게 물든 얼굴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 참을 수 없이 벅차올라서 웃어버렸다. J의 웃는 모습에 S의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부끄러움과 당황으로 얼룩진 얼굴에 J이 장난스레 묻는다. 내가 고백하고 싶은데, 너 안 한 셈으로 치면 안 돼? 하는 장난에 긴장이 풀린 S이 웃어주는 것도. 긴장이 탁 풀려, 붉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는 네 모습도 좋아서. 간질간질한 기분으로 뛰는 심장을 잠재우기 힘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인가. S의 손이 차가웠다. S은 추위를 많이 탔다. 항상 열이 많은 저한테 붙어와서 J은 그런 S을 꼬옥 안아주고는 했다. 오늘은 정식하게 손만. 네 차가운 손의 온기에 JS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저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J은 알 길이 없었다. J은 일부러 S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오늘 뭐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뭘 봤고, 누구를 만났는지. S의 대답은 미묘하게 짧아져 있었다. J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 오늘 점심에... 뭐 먹었지. 너무 바빠서 못 먹었네. 커피만 한 잔 먹었다. 왜 바빴어. ...... 정적이었다. 이런 짧은 대화의 연속이었다.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정해져 있는 대답을 하는 느낌. SJ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SJ과 함께하는 순간이 좋으면서도 힘들었다. 버거웠다. 자신과 만나는 J. JS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며 꼭 안아주었다. 누가 봐도 사랑한다는 표정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맞잡아 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외로웠다. 외로움. 현대인의 고질병. 네가 하는 태도가 달라진 게 아닌데. 네가 날 사랑해 주지 않은 게 아닌데 외로웠다. 사람으로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S도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었다. J에게 잔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다. 동성 친구를 만나느라 J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J에게 요즘 기분이 안 좋다는 말을 한다면 다정한 너는 나를 걱정해 주겠지만 감정적으로 해답도 찾지 못한 일로 징징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수록 하나둘 거짓말이 늘어 네게 미안함도 있었다. 미안했고, 외로웠고. 널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벅차게 느껴졌다.

 

매번 같이 걷던 길을 걷는다. 익숙한 길이다. 5년이란 시간은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는 기간이었다. 습관이나 생활 습관, 주변 사람들, 자주 가는 길, 행동반경 등등. 나 자신보다 상대를 더 잘 알게 되는 기간이었다. 오늘 걷는 길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는 내 집에 가는 것보다 네 집에 가는 게 더 익숙한데. 너를 데려다주고 전화하면서 집까지 돌아가는 길이 익숙한데, 오늘은 기분이 이상하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사람들이 봄탄다고들 하잖아. 가끔 그런 사람들 있지 않아? 계절 탄다는 사람들. 나도 조금 계절 타나. 오늘 기분이 좀 그렇네. J이 장난스럽게 웃는다. 가볍게 휘발되는 말이다. 벚꽃이 조금씩 떨어졌다. 여름이 가까워져 갔지만 여전히 바람은 쌀쌀했다. 손이 차가운 네 손을 꼭 잡고 네 쪽으로 더 붙는다. S이 걸음을 멈춘다. J이 한 걸음 더 나가 걸음을 멈춘다. JS을 내려다본다. S 집 근거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린다. SJ을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멈춰서서 바닥에 떨어진 벚꽃이나 보고 있었다. 떨어진 벚꽃 위로 새 벚꽃이 떨어진다. SJ의 손을 놓는다. J의 손이 너무나 쉽게 풀린다. 마른세수하는 S. 습관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다. S의 긴 웨이브 치는 머리가 흔들린다. JS의 머리카락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가만히 S을 내려다본다.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SJ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다 입을 연다.

 

“J

 

단지로 들어가지 않은 골목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 소리나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만이 둘을 메꾸어지지만 아무도 없는 골목은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듯 네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는 S이 나지막하게 J의 이름을 부른다. J아라니. 현아, 도 아니고 J. 정적이었다. JS을 부른다. 현아, 하고. 운을 열었다. 왜 현아. 정적이다. 현아, 무슨 일이야. 또다시 정적이다. 정적, 그리고 정적. 요즘 우리 대화 사이엔 공백이 있었지.

 

가끔, 사소한 하나로 싸우다가도 네가 이름을 부르면 냉랭한 네 말투가 귓가에 박힌다. S이 제 이름을 부르면 자연스레 몸이 굳었다. 현이라고 불리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가볍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현아~하고 부르면 현이 응~ 현아~ 하고 답해주고는 했다. 우리는 닮았고, 익숙했고, 사랑해서. 너와 하는 사랑이 버거웠어.

 

사랑이 버겁다. 네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잖아. 사랑해, 너를 죽도록 사랑하는데, 이 마음이 너무 버거워. 내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너. 너도 그러겠지만, 당연하게 이렇게 생각하도록 확신을 주는 널 사랑하지만, 이런 확신을 갖는 사랑이, 나는 너무 버거웠어.

 

사람들이 연인을 자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기 자신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다던가. 내겐 네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자기. . 현아. 나만 부를 수 있는 네 애칭이잖아. 나를 부르는지, 너를 부르는지. 내가 널 부르면 너는 눈을 마주쳐 주고 웃어주잖아. J이 숨을 쉰다.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신다. 차가운 바람이 폐 안에 찰랑인다. 집 근처도, 동네도. 모든 곳이 너와 함께하던 곳이었다. 네가 없는 곳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네가 할 말이 예상되어서 JS의 뺨을 잡았다. S의 뺨이 차가웠다. 넌 추위를 많이 탔어, 그래서 날 좋아했잖아. 나랑 붙어있는 걸 좋아했잖아. JS의 뺨을 잡아 들어 올린다. JS을 내려다본다. S의 얼굴 위로 J의 그림자가 비친다. S은 여전히 J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우리,”

 

S이 숨을 쉰다. 눈을 감는다. 눈을 마주치나. 시선이 어긋나 있는 것 같기도.

 

헤어지자.”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는 수많은 시간이 담겨있었다. 아무리 싸우고 미워도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었다. 헤어지자. 내 이름을 부르는 고운 네 입술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어디서부터, 뭘 잘못했지. 헤어지자고 말하는 네 표정이 처음 보는 표정이라 J이 굳는다. J이 나지막하게 현아. 하고 S을 부른다. 현아. 현아, S. 다시금 네 이름을 불러도 너는 내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다. 항상 같이 걷던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서 널 내려다본다. 벚꽃, 다 떨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떨어질 꽃이 남아있었네. S의 머리 위로 벚꽃이 내려앉았다. J이 다정한 손길로 S의 머리 위에 앉은 벚꽃을 떼어낸다. SJ과 눈을 마주친다. J이 아프게 웃는다.

 

현아.”

 

JS을 부른다. S은 대답하지 않았다.

 

“S...”

 

다시 S을 부른다. 흔들리는 말투였다. 현아, S. 네 이름을 부르는데,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J이 무너지는 입꼬리 겨우 올려 웃으며 묻는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정적이다. 정적, 이 정적이 왜 이렇게 길지. 우리 이제 헤어지면 계속 정적일 텐데. 이 짧은 정적도 긴데, 내가 너랑, 어떻게, 헤어져서 살 수 있겠어. S. S이 잘못한 게 있냐는 J의 질문에 머리를 숙이고 고래를 젓는다. 아니, 네가 잘못한 게 뭐 있어. 너는 나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인데. 그래서 그래. 네가 내게 너무 과분한 사람이라서. 내가 너무 외로워. 물론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네가 내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하면 너는 아니라고, 오히려 내가 더 과분한 사람이라고 달래주겠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힘든 거야. 네가 너무 착하고 다정하고 멋있는 사람이라서.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고. 그런데 내가 네게 이런 마음을, 생각을 갖는 게 너무 미안해서, 내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어. 너한테 미안해. 꾹꾹 눌러두었던 생각들이 결국 툭 튀어나온다. 헤어지자.

 

JS의 차가운 손을 잡는다. 매달린다. 내가 더 잘할게. 미안해.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 고칠게. S이 고개를 젓는다. 이게 문제인데. 이래서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입을 열어. S이 고개를 올린다. J과 눈을 마주친다. J은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너를, 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귀었으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 잘 알 거 같아서,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S, 현아. 네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다. 어색한 정적에 하던 네 목소리가 너무나 아프게 들린 건 처음이네. S의 손을 잡고 있던 J의 손에 힘이 점점 풀렸다.

 

.. 너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

 

헤어지자는 말에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되냐는 물음이라니.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네 다정함이 너무 아파. S은 신발 코를 바라보았다. J의 시선도 S의 시선을 따라간다. 바로 앞에 있는 네 신발. 이번엔 S이 먼저 입을 연다.

 

나 먼저 가볼게.”

 

마주 보던 신발 코가 뒤집어진다. 송편이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벚꽃이 있었다. 처음 네가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었을 때가 떠올랐다. 벚꽃이 피었고, 흔들리는 바람에 잔잔히 떨어지던 그 봄. 봄을 알리던 벚꽃 피는 계절에 만나서 벚꽃이지는 계절에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S이 떠난 자리에서도 한동안 오랫동안 서 있었다. 너와 헤어졌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단지 너랑 헤어졌는데 그 길이 네 집 앞이 아니고, 너랑 전화하고 있지도 않아서 조금 어색하게. 이상해.

 

현아, 나 정말 너 많이 좋아해. 좋아한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 좋아했어. 5년을 만나는 동안 커플들 다 겪는 권태기에서도 시간을 갖자는 네 말에 시간을 갖는 동안 널 정말 많이 생각했거든. 모든 생각이 다 네 생각이라서 너무 힘들어. 힘들었어.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은 무슨 뜻이야? 5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즐겁고 힘든 일도 다 네게 말했고, 사소한 일도 다 네게 말했는데. 나 지금 좀 힘든 거 같아. 힘든데,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나 누구한테 말해야 해?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온통 네 생각이었다. 나 오늘 밥을 먹다가 입천장을 데서 아팠는데, 말을 할 사람이 없더라. 나 이제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지. 침묵을 지키는 네게 하고 싶던 말이었는데. 사실 의미 있는 말은 아니긴 하지. 근데,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목이 메었다. 코끝이 시큰했다. 바람이 그렇게 차가운가. JS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현아.”

 

JS의 이름을 부른다. S이 한 걸음 더 걷다 멈춘다. 여전히 뒷모습이다. J이 한 번 더 부른다.

 

“S.”

 

그제야 S이 천천히 뒤돌아본다. JS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S의 표정을 보면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표정을 보지 않았다.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으로 S을 바라본다. J히 천천히 S의 앞에 선다. 거리가 좁혀진다. 그래도 한 발짝 거리감 있는 거리에서 멈춘다. SJ을 느리게 올려다본다. JS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작게 묻는다. 목이 메이도록 참은 울음에 잠긴 목소리다.

 

한번만...”

 

짧게 침묵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돼?”

 

J의 부탁에 S도 목이 메인다. J의 눈가가 붉다. J의 머리 위로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깜빡인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맨살을 스치는 바람이 추워 SJ의 옷소매를 잡는다. JS을 바라보다 끌어안는다. SJ의 품에 확 안긴다. S의 폐 속으로 J의 체향이 느껴진다. J이 놓칠세라 S을 꽈악 안는다. JS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익숙한 너의 온기. 우리 사이에 바람이 부는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 마주 꽉 끌어안는다. 내 품은 네게 꼭 맞춰져 있는데, 이제 네가 없어지면 어떡해. 안겨있던 S이 앞을 들어 J을 마주 안는다. 토닥이지는 못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우리의 멈춘 시간이 흘러가져 정해져 있는 이별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맞이해 버릴까 봐 움직이지 못했다. J의 심장 소리가 S에게 들렸다. J의 몸이 떨린다. 그러다, S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J이 먼저 놓아준다. SJ을 본다. 말은 더 필요 없었다. 둘의 눈가가 붉은 건 벚꽃이 떨어져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어긋난 시선을 맞춘다.

 

떨어진다. 멀어진다. 눈을 마주친다. JS을 내려다본다. S의 눈가가 붉다. JS의 눈가를 쓸어준다. J이 옅게 웃어준다. 무너질 입꼬리를 끌어올려 아프게 웃는다. S도 따라 웃는다. 정해진 이별이었다. 네 표정에, 미소에, 나는 알았어. 우리는 이제 끝이겠구나. 다시 만날 일이 없겠구나. 하고, 네 마지막 포옹이 너무나 따뜻하고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미소가 너무나 아파서 웃었다. S이 입을 연다. “나 이제 정말 가볼게.” 하고. JS 보여 아프게도 웃는다. “잘 가.” 하고. 아프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해야 해. 잘 살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덧붙이지는 않았다. 이별이지만, 이별이었지만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해버리면 우리의 관계까지 전부 다 깔끔하게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그저 잘 가. 깔끔하고, 담백하게 인사하자. 잘 가. 한동안은, 아니 가끔은, 너와의 추억을 꺼내보면서 아파하겠지. 아파할래. 널 사랑했으니까. 우리 둘 다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SJ을 두고 걷는다.

 

현아, 나 정말 너 많이 좋아했어. 내가 네게, 헤어지자고 말을 할 때까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알아? 생각이 끊겼다. 이엇던 생각은 끊기고, 끊겼던 생각은 또 이어지고. 숨을 쉰다. 차가운 숨이다. 네 숨이, 품이 그리워 코를 훌쩍인다. 안겼던 네 체향이 맡아지는 것만 같았다. 현아. S이 걷는다. J을 두고 걷던 걸음이 빨라진다. 뛴다. 달린다. 뒤돌아보면 네 표정에 붙잡힐 것만 같아서 눈 꼭 감고 달린다. , 너라면 다친다고, 날 잡아주겠지. 이젠 날 잡아줄 사람도 없겠구나. 눈물이 나왔다. 울 것 같았다. J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JS을 사랑해 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게 문제였다. 사랑해서. 사랑이 문제였다. 편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시간만큼 함께했지만, 오히려 너무나 사랑했기에 불편했던 너.

 

JS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SJ을 사랑하면 할수록, 쌓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S은 채워지지 않는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혔다. 네 숨으로도 호흡할 수 없는 숨은 무슨 숨일까. 한때는 네가 전부였는데, 네가 전부라 나 너무 외로워.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외롭게 해. 눈물이 고인다. 하늘을 바라본다. 울지는 않았다. 눈가가 붉었다. J이 떠올랐다. 너도 나와의 이별에 울까. 아니, 울지는 않겠다. 우리 씩씩하게 헤어졌으니까 울지는 않겠다. 그치.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를, 전달되지도 않을 혼자만의 생각을 늘어놓다 맥 빠진 헛웃음을 짓는다. 꽃샘추위에 불어오는 바람이 촉촉해지는 눈가를 말렸다. 우리 이제 끝이야. J과의 끝을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끝을 말하고자 해도, J과 마주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와 헤어지게 된다면 그건 내가 먼저가 아닌, 네가 먼저 이별을 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도 내가, 끝도 내가 맺게 되는구나.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봄에 부는 바람을 꽃샘추위라던가. 꽃이 피는 게 샘이 나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꽃샘추위. 오늘 왜 이렇게 바람이 따가울까. J이 하늘을 바라본다. 달이 떠 있었다. 인공위성인지 샛별인지, 별들도 보였다. 진부하고 풋풋하게 사랑했다. 넌 내 전부였어. 같은 하늘을 보고,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한 시간 속에 너를 지워낼 수는 없을 거 같아. 눈을 감는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현아, 현아. 나는 널 부르는 건데, 날 부르는 네 목소리가 겹쳐 들려 현아. J이 고개를 내린다. 하늘 위엔 별이었고, 발밑에는 벚꽃이라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 네 표정이 보여서, 다시 눈을 뜬다. 온 세상이 넌데. 나 이제 어떡해. JS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사랑이 버겁다는 표정을 짓는 네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잡고 싶어도 직감적으로, 이게 끝이구나. . 알 것 같아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근데, 그래도. 집까지는 데려다주게 해주지. 밤길도 어두운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안아보면 안 될까. 마지막에 마지막이 있으면 안 될까. J이 훌쩍인다. 벚꽃 때문이야. 비염이 생겼나 봐. 현아. 나는 널 부르는데, 네 목소리만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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