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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S/Sample

[HXh] 초 여름_(6,000자)

크래비티 나페스

타입: 오리지널

이니셜 처리

 

 

 

 

여름. 무덥고, 푹푹 찌는 계절이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순간이 미화되는 계절이고,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찬란한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계절. 여름은 여름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주는 울림이 있다. 바야흐로 열여덟의 여름. 여름방학을 앞둔 계절은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풋풋함만 남아서 누구라도 눈을 마주치면 가슴설레이는 계절이었다. 그래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단 한 사람. .

 

Hh을 처음 만난 것도 여름이었다. 여름 방과 후. 수요일 오후 수업은 모두가 들떠 놀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 열어 놓은 창문으로 매미 소리가 찌르듯 울려왔다. 온전한 여름은 아니라 서늘한 사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수요일 방과 후 시간. 진로에 맞는 동아리를 찾아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동아리라는 명목하에 놀며 시간을 보내는 휴식 시간. 고학년생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여유를 열일곱.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만끽하고 있었다. Hh을 처음 봤을 때. h의 첫인상이 크게 H을 잡아끌지는 않았다. 잡아끈다. 잡아끈다라, 계속 생각나기는 했지만, 첫눈에 반한다는 아니었다. 별생각은 없었다. 긴 웨이브 머리에 하얀 피부. 웨이브 치는 머리카락.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 첫인상은 첫인상인지라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특별한 게 있다면 엉뚱하다는 정도? 처음 거는 말도 안녕?”이나 너 이름이 뭐야?” 도 아니고 하나 먹을래?”라니. 대답도 듣지 않고 제 손에 젤리를 올려놓는 네 모습을 보며 참 엉뚱하네. 라는 생각도 했다. h이 준 젤리를 입에 넣었다. 레몬 맛이었다. 레몬 맛 젤리도 있네. 딸기 맛도 아니고, 포도 맛도 아니고, 복숭아 맛도 아니고, 레몬 맛.

 

열여덟이 되었다. 학년이 바뀌고 같은 반이 되면서 매일 얼굴을 보게 되었다. 한 번도 짝이 되진 않았지만 자주 얼굴을 마주 보게 되고, 첫인상이 흐려질 때쯤, 찌르르 울리는 매미 소리가 반을 메우는 계절이 되었다. 덥디더운 여름,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수업은 졸음을 몰고 왔다. Hh과 열일곱의 방과 후에서 만나기 전부터 Hh을 알고 있었다. 대화하고 말을 섞기 전부터 이름보다 얼굴을 알았다. 이상하게도 묘하게 자주 마주치게 되는 애였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라는 느낌이라 하나. 하나같이 좋은 애라고, 친해지고 싶어 하던 애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h이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지나가다 얼굴 한 번 보고 쟤가 걔구나 싶었고, 저와 눈이 마주치자, 젤리를 주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네가 그 말 다음에 웃어주며 귀엽다고 말해주고 휙 떠나는 모습을 보고, , 이래서 인기가 많구나. 하고도 알았다. 제가 더 귀여우면서 타인을 보며 귀엽다고 말하는 애. 웃긴 애다.

 

3을 앞둔 열여덟의 여름. 열일곱보단 철이 들었고 열아홉보단 풋풋한 열여덟의 Hh이었다. Hh은 같은 반이 되고 나서 매일 얼굴을 보게 되었다. 확실히 반이 다를 때보다 자주 보니까 더 친해지는 거 같아. h은 발랄하고 통통 튀었다. H을 보면 어디서 났는지 항상 작은 간식을 챙겨주고는 했다. 저렇게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은지, 작은 주머니에선 매번 군것질거리가 나왔다. Hh에게 받은 사탕이나, 젤리를 먹지도 못하고 하나둘 쌓았다. H의 집 책상 위에는 h이 준 간식으로 채워져 갔다. 가끔 당이 떨어져 단 음식이 당길 때가 있었지만 왜인지 h이 준 간식은 먹기 아쉬워서 모아두게 되었다. H의 시선은 h을 쫓았다.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어쩐지 시선이 향했다. 비타민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발랄하지. H의 주변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h의 주변에도 사람이 많았다. 많은 걸 떠나서 h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즐거워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저도 h의 옆에 있으면 저런 표정을 짓나?

 

눈이 마주친다. hH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다. H이 입으로 인사한다. H의 입술이 움직인다. 안녕. 하고. 입 모양을 읽은 h의 얼굴이 화악 붉어져 눈을 마주치지 않은 척 시선을 피한다. 그런 h의 태도에 H이 쿡쿡 웃는다. 다 봤는데. H의 귓불도 붉어진다. H이 창밖을 바라본다. 해가 쨍하니 떠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교실은 열어놓은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여름에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했다. 하얀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고 있었다. H이 다시 h을 본다. H의 무의식은 항상 h을 향했다. 이런 H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h은 언제나 친구들과 붙어 다녔다. 작년 동아리를 같이 하던 친구들인가. 항상 저보다 먼저 간식을 나눠 먹은 h의 친구들.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심히 다가와 제게만 다른, 조금 더 신경을 쓴 듯한 사탕이나 초콜릿을 전해주는 h을 보면 기분이 간질거렸다.

 

방과 후가 없는 날은 공연 준비로 항상 연습실로 향했다. hH은 같은 방향이었다. h을 같은 버스에서 탔을 때. 괜히 말 한 번 붙여보게 되었다. “너도 이 버스 타?”하고, 그렇게 h과 가끔, 종종, 같이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같이 하교를 하는 건 아니었다. HH대로 같이 하교하는 친구가 있었고, hh 나름대로 집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들이 있었으므로 둘이 굳이 같이 하교하자는 말을 하고, 단둘이 가지는 않았다. h은 언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H도 같이 가자고 하는 친구나, 가는 길이 같다며 붙어오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버스를 타도. 서로 쟤가 저기 있다는 것을 인식만 하고 말을 걸지는 않았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눈이 마주친다. H이 웃으며 h만 보이게끔 손을 흔든다. H을 본 h의 눈을 깜빡인다. 귓불이 붉어져서는 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흔들리는 버스, 덜컹거리는 심장. 다른 친구들 모르게 주고받는 인사는 묘한 간질거림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점심시간 이후 오후 시간대는 졸음이 밀려왔다. 하늘은 푸르고 선선한 선풍기 바람이 피부를 말려 딱 기분 좋은 온도를 유지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H은 수업을 듣다가 h을 보기도 했고, 그러다 눈도 마주치고, 시선을 피하게 되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수업을 듣고. 하루의 반복이었다. hH과 눈을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귓불이 붉어졌다. H은 누가 봐도 보편적으로 정말 잘생긴 사람에 속했다. 동글동글 귀여워서 자꾸만 보게 되는 남자아이였다. 옆에 서면 저보다 한뼘은 더 큰 키에 남자애구나, 설렘도 들어서 괜히 저 혼자만 의식하는 거 같아 찔리고는 했다. H은 종종 h을 바라봤다. h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고,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서 돌리는 모양새가 귀여워 쿡쿡 웃음이 나왔다. 다시 수업을 집중하려 해도 h의 붉어진 귓불이 시선을 끌어, 그렇게 남은 수업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같은 반이라 하교하는 시간이 겹쳤다. 별일이 없다면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 같은 버스. 다른 친구들과 함께 탄다. 친구들과 대화하다가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같이 하교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하교하는 버스에서 인사하는 사이정도 되었다. 하굣길 만원 버스에서도 기가 막히게 눈이 마주쳤다. h이 무의식적으로 H을 시선으로 쫓았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인사를 인식한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찾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다.

 

흔히 말하는 썸이라거나 짝사랑은 아니었다. 애초에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친구라고 하기에도 같은 반 친구라는 것 말고는, 가끔 대화한다는 것 말고는 별 사이가 아니었다. 각자 친구가 있었고, 노는 무리가 있었다. Hh과 썸을 타야겠다거나 좋아한다는 모르겠고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h의 반응이 귀여웠다. 개인적으로 연락하지도 않았다. 연락처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인스타그램 아이디였고, 그마저도 디엠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서로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면 하트를 찍고는 했다. 그런 네 반응에 설레기도 했지만, 우리가 썸을 타는 건 아니잖아. 그냥, 이건 내가, 일방적으로, 너를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친구로서. h, 생긴 건 고양이처럼 생겨서 하는 짓은 귀엽게 짝이 없다. 허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H에게 호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면 설렜고, 설레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게 된다, 그뿐이었다. 요즘 들어서 hH의 태도에 어쩔 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눈만 마주쳐도 설렐 것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아이가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오늘 교복을 잘 입었나, 화장이 뜨진 않았나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둘이 동시에,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은 더 친해지고 싶다였다. 쉬는 시간 hH의 비어있는 앞자리에 앉는다. h이 손 내밀어봐. 하면서 웃는다. H이 왜? 하면서도 얌전히 손을 내민다. 오늘은 또 뭘 주려고. h은 실실 웃으며 H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린다.

 

그냥, 손 한번 잡아보고 싶었어.”

 

h이 웃는다. 장난스레 웃으면서도 붉어진 귓불을 숨기지는 못했다. 나름의 용기였다. 지금이면, 이렇게 굴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한 번 잡아본다. hH의 손 위에서 제 손을 뺀다. 스르륵 맨살이 스친다. 살이 스치는 소리가 둘 사이를 채웠다. 서로 어긋난 시선으로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울렸다. 묘하고 짧은 정적 속에 다시 눈을 마주친다. 밝은 햇살에 h의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잠시 시선을 빼앗긴 H의 얼굴도 화르르 붉어진다. 심장이 쿵쿵 울려서 혹시 네게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스친다. h은 장난이었다는 듯 웃는다. 그러다 H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h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h이 눈을 크게 뜨며 H과 눈을 마주친다. h이 눈을 깜빡인다. H의 하얀 피부가 옅게 붉어져서는 긴장되는 시선으로 h을 바라본다. h 또한 침을 삼키는 방법도 잊은 채 H을 응시한다. H이 우물쭈물 침묵한다. 고백은 아닌데, 조심스럽게 오랫동안 고민한 물음이었다. 지금이면 꼭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가져본다. 숨을 다잡고 묻는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귀가해?”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H이 작게 묻는다. H의 목소리가 큰 매미의 울음소리에 묻히지도 않고 잘도 들려온다. 쿵쿵, 매미 소리보다 심장 소리가 더 큰 거 같아. h은 응, ? 하며 H을 바라본다. H의 표정이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남자아이의 표정이라 덩달아 긴장감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시선을 피하고 싶을 만큼 간지러워서 손에 땀이 날 것 같았다. H이 올곧게 h을 바라본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내가 이해한 말이 맞는지 해석하고 있는 h에게 H이 한 번 더 입을 연다. 작고, 떨렸고, 확신은 없지만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네가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오늘은, 나랑만 하교하면 안 돼?”

 

hH을 바라본다. 눈을 마주친다. 심장이 뛰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을 꼭 감고 싶었지만 감지 않았다. 널 본다. 바라본다. h의 얼굴이 붉어진다. 여름이라는 계절 아래에서, 감정이란 얼마나 덧없을까. 이렇게 세차게 뛰는 심장이 계절탓이면 어떡하지. h이 작게 웃는다. h의 좋아. 라는 한마디에 H이 해사하게 웃는다. 창문으로 한낮 여름 햇살이 쏟아진다. 한여름의 햇살보다 네 미소가 밝아서 h도 따라 웃는다. 여름이었다. 모든 감정과 행동을 여름이라 그렇다고 통칠 수 있는 바야흐로 여름, 우리의 여름은 얼마나 길까? 맞잡은 손에 땀이 찰 것 같았다. 여름이었고, 더웠고, 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오늘은 우리 같이 하교하겠다. 덜컹대는 게 버스인지 심장인지 모를 하굣길. 너와 함께하고 싶어.

 

열여덟의 여름이었다. 우리는 서툴렀고, 미숙했으며, 남는 건 감정뿐이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구분도 못 할 설렘을 안고서 그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꺼낸 말. 같이 걷고 싶다는 마음으로 네 손을 잡는다. 손을 잡고, 같이 걷는 사이는 무슨 사이야?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아직은 친구, 나는 네가 좋으니까. 서로 좋아하는, 많이 좋아하는 친구. 매미가 울었다. 열린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흔든다. 사춘기의 끝 무렵, 한 시절을 너와 함께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