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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미정(GL로판)

10. 어렸던 시절 (5,214자)

 

 

미엘은 사람이고 싶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다. 마법사는 신이 버리고 간 불량품이었다. 인간이지도, 마물이지도 못했다. 인간이라기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물이라기엔 사람과 너무도 흡사한 닮아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과 다른 베타성을 띄는 존재만이 끊임없이 나도 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설명해야 한다. 미엘은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으므로 사람임을 설명해야 했다. 나도 살아있다고. 살아간다고.

 

미엘의 부모는 갓 태어난, 울지 않는 미엘을 보고 숨을 멎었다. 양수에 불어있는 아기에 비해 뚜렷하고 깔끔한 이목구비도 한몫했지만 미엘은 눈을 깜빡이며 울지 않았다. 깜빡깜빡. 표정이라는 게 얼굴에 뜨지 않았다. 부모의 노력에도, 울지 않는 아이는 기이한 존재였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몇 개월이 지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도, 미엘의 얼굴에 표정이 없는 모습을 보고 부모는 결국 미엘을 마탑으로 데리고 갔다. 미엘의 기억조차 없을 때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는 마력이 없는 사람들이 키울 수 없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나 감정적인 측면에서 마력이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파멸로 가는 길이었다. 미엘의 부모는 미엘의 기억이 시작할 시기일 즈음 마탑에 맡겼다. 그렇기에 미엘은 부모의 기억이 전혀 없지도, 있지도 않은 희미한 상태로, 애정에 대한 부채감만 잔잔하게 남은 채 성장했다.

 

마탑에서는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평범한 마법사들은 일정한 교육을 통해 적당한 감정을 이해하고 가지며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 마력이 강할수록 상대를 공감 할 수 없다 했다. 자라나는 미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운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늘어갔다. 현 대마법사를 뛰어넘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넘기는 마력이 미엘의 몸에 흘렀다. 천재라고 추앙받았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마력이 넘치면 넘칠수록 인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교육을 통해서도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없는 미엘을 보고도 마탑은 타고난 마력으로 봐서 아마 이 지구에서 다시없을 마법사라 칭송했다.

 

미엘의 금빛 마력을 뛰어넘는 마법사는 없었다, 이대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지금의 대마법사를 훨씬 뛰어넘는 마법사가 될 거라는 말이 자자했다. 미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만, 모두가 옳다고, 하라고 말하는 일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미엘은 높은 명예를 가져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쁨 또한 알지 못했다. 소박하지만 행복하게도, 큰 부와 명예를 가지고 호화롭게 즐기는 삶도 살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있지 않았다.

 

미엘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감정을 모르고 사는 존재라면 이 삶의 권태는 어떻게 설명이 되는 것이고, 무기력한 삶에서 그저 반복 학습만을 하는 자신은 무엇일까. 하고, 미엘의 바깥출입은 철저히 제한되었다. 이유를 몰랐지만,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책 속에서 보이는 바깥은 흥미를 동할 무언가가 없었다. 그렇게 제한된 인간관계와 경험을 가지고 17살이 되었다.

 

18, 성인식을 치르며 처음으로 마탑 밖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게 지루했다. 진탕 술을 마시면서 헤벌쭉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풍기는 술냄애세 역하다 생각한 게 전부였다. 사람들은 미엘을 보며 부럽다며 한다마디씩 말을 걸었다. 어린 나이에 큰 재능을 갖고, 활용할 수 있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라며 제 인생을 한탄했다. 정규 교육과정을 함께 수료했던 동기들도 한껏 들떠있었다. 마주치면 무어라 말을 걸기도 했지만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니었다. 미엘에게 남은 건 지나간 사람의 포도 와인 냄새, 옅은 땀내, 개인 체향. 희미해지는 목소리들. 전부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들이었다.

 

그날은 유독 큰 달이 뜬 밤이었다. 마탑에서 치러주는 성년식은 화려하고 스케일이 컸다. 고위 귀족들과 왕족의 축하를 받고 밤늦게까지 연회가 계속되었다. 미엘은 적당히 얼굴을 비추다 밖으로 나왔다. 미엘은 마탑의 정치적 선전이 피곤했다. 아무리 성인식이 미엘만을 위함이 아니라고 해도 얌전히 인사만 하고 있기엔 따라오는 처음 얼굴을 비친 천재 마법사타이틀에 지쳤다.

 

미엘이 행사장 주위를 걷다 조각상들이 전시된 공원 앞에서 멈춰 섰다. 입구부터 신의 형태를 띄우고 있는 조각상들이 놓여있었다, 미엘은 조각상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가만 보면 신들도 웃기지. 도대체 감정이 뭐라고 신들은 그리 잘 표현하며 살면서도 왜 마법사에겐 감정이 허락되지 않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한 소년이 술에 취해 다가왔다.

 

소년은 비틀대며 걸어왔다. 가까워질수록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싫었다. 와인과는 다른 불쾌한 향이었다. 소년은 귀족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품위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년은 고주망태가 되어선 미엘이 행사장 안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인생 한탄을 풀어놓았다. 불행을 이야기하며 웃는 소년을 여자가 가만히 바라봤다. 소년이 계약 운운하며 미엘의 손을 잡았다. 미엘은 소년을 노려보다 오른손을 마주 잡았다.

 

나도 너처럼 사소한 거에 웃을 수 있을까.”

 

뭐가 그리 좋아 헤실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행하다며 미소 짓는 게. 이성적으로 해석할 순 있어도 와닿지는 않았다. 소년은 미엘을 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고. 내가 너였으면 소원이 없을 거라고. 그 말에 미엘은 무어라 답했나. 드문드문한 기억 속 몇 마디 후 금빛 마력이 미엘과 소년을 감쌌다. 마력 빛이 줄어들며 주위가 어두워졌다. 소년과 여자의 겉모습이 바뀌었다. 소년은 여자의 금빛이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반쯤 술이 깬 표정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소년의 모습을 한 채 기분 나쁜 듯이 잡고 있던 손을 쳐냈다.

 

소년은 미엘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엘의 모습으로 살며 미엘의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술에 깨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성인식이 끝나고 바로 위임식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했다. 아무도 미엘의 모습을 한 존재가 소년일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마법사의 위임식이었다. 겉모습만으로 날고 기는 유능한 마법사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눈속임으로 외향을 바꿔도 미엘의 금빛 마력만큼은 속일 수 없었다. 소년은 마법사 사칭 죄목으로 마탑 밑 지하 감옥에 구금되었다. 마법사들이 감정을 계약하여 퇴출당하는 일은 간간이 있었지만 다시없을 마력을 타고 태어난 아인지라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국가에서 사용하는 마력의 50퍼센트는 미엘이 제공하고 있었다. 성인식도 치르지 않는 꼬마였지만 미엘에 대한 국가의 마력 의존도는 현 대마법사를 뛰어넘어있었다. 미엘은 나라에서 없어선 안되는 존재라 하루빨리 미엘을 찾아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또한 미엘은 보호 관리가 필요한 존재라 찾아내지 못하면 뒤따라올 문제들에 상부는 골머리를 썩이었다.

 

소년의 감정을 가져 기쁨을 알게 된 미엘은 종일 향락에 취해 살았다.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던 인생이 아까웠다. 온종일 진탕 마시고 늘어졌다. 마시고, 피우고, 방탕하게. 질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생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었다.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일들로 24시간을 꽉 채웠다. 술을 진탕 마시며 한심하게 취해있던 소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소년의 친구들은 소년이 다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은 지하 감옥에 갇혀 미엘의 모습으로 온종일 울었다. 어떤 일도 기쁘지 않고, 과거의 기억들은 전부 최악이었으며,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었다, 여긴 너무 춥고, 어둡고, 밖에 나가고 싶다고. 지하 감옥에서 깔끔한 병실로, 객실로 옮겨졌지만, 소년은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소년의 모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엘의 계약을 강제로 해지할 수 있을 만큼 마력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 미엘의 위치를 추정할 수는 없었지만, 미엘을 잡을 수는 없었다. 미엘은 꼬리가 잡힌다 싶으면 금세 다른 곳으로 떠났다. 계속된 접촉으로 미엘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술에 취해 대마법사를 만났다. 마탑은 미엘에게 소년의 감정을 돌려주고 모습을 찾으라 명했다. 하지만 미엘은 대충대충 답하며 손을 휘저었다. 다음에요~. 네네, 그럴게요. 알아서 할게요. 하고.

 

날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지쳐갔다.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고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내려 했던 사건이 길어졌다. 소년은 날이 다르게 초췌해 갔다. 마탑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던 소년이 쓰러지면 신성력을 주입해 깨웠다. 미엘의 모습을 한 소년이 대마법사를 붙잡고 소리치며 울어도 마탑이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소년은 울음을 멈추고 객실 앞을 지키는 사람에게 펜과 종이를 달라고 했다. 사람은 당황했지만, 단식을 멈추고 수프를 마시는 소년을 보고 펜과 종이를 건넸다. 어쩌면 소년이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다음날 미엘의 모습이 돌아왔다. 친구들과 놀던 미엘은 낮아진 시야에 눈을 깜빡였다. 미엘 앞 친구들도 나, 네가 여자로 보여. 라는 헛소리를 했지만 전부 향락에 취해 환각인 듯 몽롱하게 깔깔 웃었다. 미엘은 눈을 깜빡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소년은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숨을 끊었다.

 

미엘은 마탑으로 돌아왔다.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모습에 모든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미엘은 소년의 죽음에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탑은 이 일을 은폐시켰다. 소년의 사인은 술에 취해 창문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모습을 한 미엘이 온종일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돌아 다녀 의심하는 사람은 적었다. 방탕하게 지내던 소년이 술을 마시다 발을 헛디뎠겠지, 하고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미엘은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 살아가게 되었음에도 죄책감이 없었다. 책임감이 없는 미엘.

 

미엘의 욕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렇게 한 사람, 한사람 감정을 잃어가고, 죽어갔다. 사람들도 금기를 어긴 미엘을 마탑이 쫓아내지 않고 쉬쉬한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갔다. 대마법사의 위임식을 대대적으로 광고해놓고선 아직도 새로운 대마법사에 대한 언급이 없는 마탑의 행동 또한 그 소문에 힘을 부쳐주었다.

 

황궁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도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평범한 사람과 같은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어진 미엘은 그저 즐거웠다. 이 세상 행복한 모든 감정은 손에 넣은 것 같았다. 우울도 분노도 불행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으니 인생은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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