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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미정(GL로판)

11. 도망친 곳 (5,717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탑을 대상으로 시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비마법사 사이의 갈등으로 일이 불거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마탑을 신뢰하지 못했고, 마법사를 혐오했다. 마법으로 굴러가는 세계에서 마법사는 꼭 필요한 존재라 정치적으로 꼬이고, 꼬여 논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일이 이렇게 번질 때까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황궁까지 불만의 목소리가 닿았다. 시위가 커져 쿠데타로 변질할 위협을 느낀 황궁은 미엘을 내쫓기로 공표했다.

 

사람들은 미엘을 죽이기를 원했다. 마법사의 죽음은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원해야 가능했고, 죽음을 보조해줄 마법사들이 셋은 붙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법사의 죽음으로 닥치는 피해가 컸다. 보조 마법사들이 결계를 치지 않는다면 마법사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주변 존재의 몸에 들어가 심장을 조였다. 마법사를 죽이는 방법은 마법을 이용한 자살이 보편적이었다. 범죄자라면 보조 마법사들이 붙어 억지로 숨을 끊었다. 미엘의 경우엔 후자여야만 가능했다. 모두가 미엘의 죽음을 원해도, 미엘이 지닌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국가에서 사용하는 마력의 절반이 미엘에게서 뽑아내는 마력이었으므로.

 

미엘은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강력한 증오를 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약했다. 제 죽음을 선두에 나서서 지지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자신을 혐오하는지 물었다. 사람은 미엘을 보며 넌더리를 쳤다. 미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사람 네 번째 계약자의 아버지였나.

 

미엘은 시위의 주동자를 찾았다. 단순 궁금증이었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엘은, 납득될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어스름한 밤 남자의 집을 두드렸을 때 남자는 문 앞에 서있는 미엘을 보며 멱살먼저 잡았다. 남자의 소음에 주변의 관심을 끌어 미엘은 소리 차단 마법을 전개했다. 주변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남자는 미엘을 노려봤다.

 

넌 마물이야. 인간이 될 수 없어!”

 

남자는 미엘의 얼굴에 침이 튀기도록 소리쳤다. 미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가 주먹을 올려도 제 분을 못 이겨 내리치지 못했다. 파들거리는 손으로 미엘의 멱살만 잡고 있었다.

 

절 왜 그렇게 미워하세요?”

 

남자는 미엘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가증스러웠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헛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미엘을 노려봤다.

 

궁금하면 나랑 계약할래?”

 

남자의 입꼬리가 비틀게 올라갔다. 미엘은 남자의 손을 잡았고, 남자는 미엘의 오른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미엘은 정말 궁금했다, 맞잡은 두 손에서 은은한 금빛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미엘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마법사는 죽여도 죽지 않는데, 미엘의 죽음. 그게 남자의 소원이었다. 미엘의 금빛 마력이 수도의 전역에 퍼졌다. 곧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남자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휘청였다. 마법사들이 미엘의 금빛 마력을 보고 찾아왔다. 미엘은 죽어가고 있었다. 계약한 남자 또한 함께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은 뭘까. 미엘이든, 남자든 죽으면 계약이 이루어질 수 없는데. 미엘은 분노를 알았으나 죽어가고 있었고, 남자는 분노를 잃었으나 손에서 단도를 놓지 않았다.

 

분노. 증오. 슬픔. 남자의 감정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마법사의 죽음만큼이나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였다. 마법사들은 남자와 미엘을 수습해 마탑으로 돌아갔다. 마탑 고위 관료들과 황실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야 했고 긴급 소집된 회의가 길게 이어졌다. 새벽이어도 밝았다. 미엘의 금빛 마력이 제도를 뒤덮었다.

 

다음날 수도에는 시위를 주도했던 남자가 목숨을 바쳐 미엘을 죽였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마법사들은 미엘의 흘러나오는 마력들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 다 죽어가고 있었다. 죽는대도 미엘만은 살려야만 했다. 도시에 깔린 미엘의 금빛 마력은, 제도 속 모든 존재들을 시한부로 만들었다. 결국 계약의 결렬을 위해 마탑은 남자를 죽였다. 미엘은 살아남았고, 금빛 마력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마탑은 해가 뜨자마자 사람을 심어 시위를 주도했던 남자가 미엘을 죽였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당연하게 살인한 남자도 미엘의 마력에 죽었을 테니. 깔끔한 상황정리였다. 황궁은 죽은 남자를 애도하고자 국가에서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남자라 칭송하며 애도했다.

 

미엘은 눈을 깜빡였다. 상황이 종결된 지 2주일 만의 기상이었다. 눈앞에는 의사가 미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엘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어지는 면담과 취조와, 늘어나는 업무들에 숨 쉴 틈이 없었다. 사유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리곤 제 어리석음에 치욕스러웠다.

 

자신의 철없음에, 마탑과 황궁의 행동에, 타인의 분노를 이해하고 나서야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선에 화가 났다. 하지만 미엘은 이미 사회에서 죽은 사람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의 장례를 찾아가지도 못한다. 면목도 없지. 남자의 감정이 미엘의 심장에 남아있었다. 미엘은, 아무도 모르게 깊은 산에 처박혔다. 어느 새벽의 일이었다. 다음날, 마탑과 황궁이 떠난 미엘의 흔적에 뒤집어졌지만, 미엘은 죽은 사람이었으므로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죽지 못해 사는 몸이었다. 마법사는 혼자서, 혼자의 결심만으로는 목숨을 끊을 수 없었다. 마력이 자가 치유를 해가기 때문이다. 미엘처럼 강한 마력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오래오래 살았다.

 

미엘이 숲속에 들어간 이후 미엘과 아카데미에서 쭉 한방을 쓰던 벨라가 대마법사가 되었다. 벨라의 마력은 미엘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졌으나 다른 마법사보단 강한 편이었다. 미엘이 수석이면 벨라는 항상 차석이었다. 하지만 미엘의 마력이 국가 마력 사용량의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므로 벨라의 마력만으로는 국가가 운영되지 않았다.

 

노쇠한 전대 마법사는 은퇴 후에도 국가에 마력을 보탰다. 전대 마법사의 마력이 고갈되어 숨이 끊어지고 황궁은 위기를 느껴 미엘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미엘은 평생 자신의 마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숲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만 잘 생각이었다.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감정을 삭일 생각이었다.

 

미엘의 행방을 찾게 된 건 그로부터 4년 후였다. 미엘의 저택에 벨라가 찾아왔다. 벨라가 미엘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몇 겹의 마력 보안을 풀고 미엘을 찾았다. 벨라는 지친 기색이었다. 미엘은 놀란 표정으로 벨라를 바라봤다. 벨라가 가진 마력으로 미엘이 걸쳐놓은 술식을 풀어내려면 많은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풀어내야 했다. 벨라는 저택에서 나온 미엘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미엘의 팔을 붙잡고 돌아와달라 고개를 숙였다. 미엘은 당황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슬쩍 웃었다.

 

벨라 오랜만이네."

", 그런 소리가 나와?”

 

벨라는 미엘을 노려보았다. 미엘은 벨라를 부축해 저택 안으로 들였다.

 

내가 너 찾으려고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씨... 중얼거리는 벨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긴, 나도 어렵게 걸었던 술식이니 너도 힘들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미엘은 커피 두 잔을 내렸다. 씩씩대며 미엘을 노려보는 벨라 앞에 커피 한 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미엘은 커피에 각설탕을 넣었다. 벨라는 건강에 좋지 않다며 미엘의 손을 저지했다.

 

왕권이 무너질 거야.”

 

벨라가 입을 열었다. 벨라의 또렷한 붉은 눈이 미엘을 응시했다. 현 국가는 인력도 마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사람을 갈아 넣어도 미엘을 통해 얻은 부와 영광은 미엘의 몰락으로 끝이 났다. 미엘은 업보라고 생각했다. 수도에 평생토록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자신조차 자신을 잊을 때까지 조용히 죽어갈 생각이었다. 몇 겹을 쌓아 올린 보안을 유지하는데 드는 마력과 이렇게 큰 저택을 먼지 없이 유지하는 마력 그리고 기타 등등 불필요하게 마력을 사용하다 보면 언젠간 죽겠지. 미엘은 눈을 감고 목숨이 끊길 시기를 예상했다. 펑펑 쓰다 보면 언젠간, 다 쓰겠지. 미엘은 돌아와달라는 벨라의 청을 거절하곤 돌려보냈다.

 

벨라는 매일 미엘을 찾아왔다. 돌아와 달라며, 그렇게 매일을 청했다. 벨라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야위어갔다. 벨라의 마력이 쭉쭉 떨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법사에게 마력 고갈이란 죽음이었다. 미엘은 벨라의 죽음을 그저 보고만 있기 불편했다. 오늘도 찾아온 벨라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너도 알잖아.”

 

굳게 말하는 미엘의 모습을 본 벨라의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그렇지만...... 마력이 부족한 거라면 내가 나눠 줄게.”

 

미엘은 벨라의 손을 잡아, 손등에 숨을 불어넣었다. 미엘의 금빛 마력이 벨라의 손등을 타고 심장에 스며들었다. 벨라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미엘은 벨라의 손등에 맞춘 입을 떼어내곤 벨라를 올려다보았다. 놀란 벨라의 모습을 뒤로한 채 죽지 말라 속삭이곤 손을 떼어냈다. 벨라는 입을 뻐끔거리며 미엘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로 미엘은 종종 자신을 찾아 저택에 오는 벨라에게 마력을 충전해 주곤 했다. 벨라의 마력 소모는 심각했다. 미엘이 마력을 주지 않는다면 벨라는 머지않아 숨이 끊어졌겠지. 미엘은 벨라를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벨라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미엘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한 번 푼 술식이라 해도 풀 때마다 마력이 소모된다. 이곳까지 와서 마력을 풀고 또 돌아가기까지의 소모도 만만치 않다. 그냥... 내가 갈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일 이렇게 찾아오지 않아도 돼, 내가 갈게.”

 

벨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엘을 바라봤다. 미엘의 말을 의심하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정말? 을 되물었다. 비록 수도에선 죽은 사람이지만 몰래 갔다 오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친구로서 벨라가 죽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미엘은 가끔 수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엘은 눈을 감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 있으면 떠올랐다. 쏟아지는 상념을 몰아내고자 집에 있을 세리나를 생각했다. 사랑의 포옹이라며 팔을 벌리던 세리나가 떠올라 쿡쿡 웃음이 나왔다. 세리나 생각보다 말랐던데 내일은 뭘 먹이지,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 낭랑한 벨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엘, 늦어서 미안해.”

 

미엘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벨라는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미엘은 소파에서 일어나 서둘러 온 것 같은 벨라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었다. 벨라는 문을 잠그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 오늘도 바로 가는 거야?”

.”

 

벨라는 하얀 장갑을 벗어 미엘에게 손을 건넸다. 미엘은 벨라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었다. 금빛 마력이 벨라의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벨라의 마력이 차오르자 미엘은 입술을 떼어냈다.

 

그래도 좀 쉬다 가..”

집이 편해.”

 

미엘이 응접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벨라가 미엘을 한 번 더 붙잡으러 돌아봤을 때 미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벨라는 미엘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면서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마력 차이에 허탈감한 웃음이 나왔다. 노력으로 따라갈 수 없었다. 마력은 소모성이었다. 화수분 같은 마력을 가진 미엘이 특이한 케이스였다. 벨라는 대마법사면서, 마력을 충전 받아야 했으나 가끔이라도 미엘을 마주치는 게 좋아서 또 자존심이 상했다.

 

벨라가 미엘에게 가진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어릴 적 마탑에서 내내 붙어있었으면서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은 미엘이 미웠고, 압도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마력이 부러웠으며,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지 못하는 미엘을 동정했다.

 

벨라는 미엘이 입을 맞춘 손등을 쓰다듬었다. 입맛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