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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민과 편안한 밤 (5,212자) 얕은 마력으로 꽁꽁 둘러싼 미엘은 도시로 나왔다. 누구도 미엘을 알아보지 못했다. 흐릿한 인상으로 기억되지도 않을 껍데기를 만들어 뒤집어쓰고는 많은 인파 속을 걷는다. 스스로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수도에 자주 나오면서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미엘은 많은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다. 성인식이 지난 지도 두 세기가 지났다. 미엘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었다. 그런데도 미엘은 얕은 마력 껍데기에 자신을 감추고 또 감췄다. 벨라에게 마력을 주고 거리에 나오면 항상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경험이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겪어보지 못할 종류였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땐 알 수 없었던 시선이다. 우습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을 ..
11. 도망친 곳 (5,717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탑을 대상으로 시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비마법사 사이의 갈등으로 일이 불거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마탑을 신뢰하지 못했고, 마법사를 혐오했다. 마법으로 굴러가는 세계에서 마법사는 꼭 필요한 존재라 정치적으로 꼬이고, 꼬여 논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일이 이렇게 번질 때까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황궁까지 불만의 목소리가 닿았다. 시위가 커져 쿠데타로 변질할 위협을 느낀 황궁은 미엘을 내쫓기로 공표했다. 사람들은 미엘을 죽이기를 원했다. 마법사의 죽음은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원해야 가능했고, 죽음을 보조해줄 마법사들이 셋은 붙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법사의 죽음으로 닥치는 피해가 컸다. 보조 마법사들이 결계를 치지 않는다면 마법사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주변 존재의..
10. 어렸던 시절 (5,214자) 미엘은 사람이고 싶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평범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했다. 마법사는 신이 버리고 간 불량품이었다. 인간이지도, 마물이지도 못했다. 인간이라기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물이라기엔 사람과 너무도 흡사한 닮아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람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과 다른 베타성을 띄는 존재만이 끊임없이 나도 같다고, 다르지 않다고 설명해야 한다. 미엘은 일반적으로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으므로 사람임을 설명해야 했다. 나도 살아있다고. 살아간다고. 미엘의 부모는 갓 태어난, 울지 않는 미엘을 보고 숨을 멎었다. 양수에 불어있는 아기에 비해 뚜렷하고 깔끔한 이목구비도 한몫했지만 미엘은 눈을 깜빡이며 울지 않았다. 깜빡깜빡. 표정이라는 게 얼굴에 뜨..